서병수 부산시장, 권기선 부산경찰청장,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어윤태 구청장ㆍ군수협의회장, 윤인태 부산고등법원장 등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했다. 23일 오후 2시 현재 1515명이 분향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23일 도청에 마련된 분향소 조문에서 “김영삼 前 대통령님께서 한국현대사에 대한민국의 변화를 이끈 가장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금융실명제라든지, 하나회 척결이라든지, 공직자재산등록이라든지, 성역없는 사정이라든지, 어떻게 보면 한국현대사의 건국 이래 가장 큰 변혁을 이끈 그런 대통령이셨습니다. 내일(24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빈소조문을 가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새누리당 부산시당(위원장 박민식 의원)은 ‘민주화의 큰별, 김영삼 前 대통령 서거와 관련 성명을 통해 “누가 뭐라 해도 故김영삼 前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은 부산이다. 1979년 신민당 총재 시절 의원직 제명은 부마항쟁을 촉발하였고, 1985년 2.12 총선 혁명, 1988년 6월항쟁과 1990년 3당 합당 등 굵직굵직한 정치적 역정을 자랑스러운 부산시민들과 함께 걸어왔다”며 “350만 부산시민과 함께 깊은 상실감과 무거운 슬픔이 담긴 애도를 보낸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부산시당(위원장 김영춘)도 추모 논평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겠다’고 한 그의 결단은 군사독재에 맞서는 계기가 되었으며, 결국은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내 군사독재를 종식하고 직선제 개헌과 더불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며 “민주주의가 심각히 퇴행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중단 없는 민주화를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를 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현대사의 산증인이자 부산이 낳은 자랑스러운 정치지도자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킨 민주화의 거목이다. YS라는 애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독재 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던 ‘쌍두마차’였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삶을 되살펴보면 삶 그 자체가 민주화 투쟁이었다. 1969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다 상도동 자택 앞 골목길에서 괴한에 의해 ‘초산 테러’를 당했으며, 그후 박정희 유신 독재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다 숱한 탄압을 받았다.
1974년 5월 신민당 총재로 선출된 후 유신 체제에 맞서다 결국 2년 뒤 ‘각목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권을 내주기도 했으며, 특히 1979년 5월 총재직에 재당선된 후 2개월 만에 ‘YH무역 사건’으로 국내 정당 사상 처음으로 법원에 의해 총재 직무가 정지되고 의원직마저 박탈당하는 탄압을 받았다. 이 때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표현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민주화 투쟁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으며, 1979년 10ㆍ26 사태를 계기로 신군부가 등장하자 가택연금 상태에서 23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맞섰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돼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을 때도 재임 기간 중 금융실명제 도입, 공직자 재산등록제, 지방자치제 실시,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하나회 해체, 전두환ㆍ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와 처벌 등 굵직굵직한 개혁 조치를 단행하며 중단없는 민주화를 추진했다.
김민지 기자 news@s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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