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스포츠팬을 위한 얕은 지식사전] 제4화 : '소국(小國) 수리남 혈통' , 축구로 세계를 호령하다

기사입력 : 2018-02-07 17:49
+-
(사진=웹데일리)
(사진=웹데일리)
[공유경제신문 이정아 기자] ‘수리남’은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작은 소국이다. 수리남은 이름난 특산품이나 관광지, 세계적인 인물도 거의 없다. 역사에서도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을 제외하면 연관된 일이 없다. 이렇듯 수리남은 세계 무대에서 동떨어진 곳처럼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수리남이 축구계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수리남이 축구 역사에 국가대표팀으로 직접적인 역사를 새긴 것은 아니다. 축구사에서 수리남의 이름은 다리를 하나 건너, 수리남계 2세, 혼혈 선수들의 활약으로 남아있다. 80-90년대 유럽 축구를 말할 때, 네덜란드의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고 활약한 수리남 혈통 선수들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리남 혈통이 활약한 1980-90년대는 네덜란드 축구의 황금기 중 하나다. 요한 크루이프와 라누스 미헬스가 정립한 ‘토탈 사커’가 네덜란드 축구의 첫 황금기라면, 이 시기는 네덜란드 축구가 부활을 알리고 ‘축구 강국’으로 발돋움한 두 번째 황금기였다. 네덜란드 축구 역사 중 중요한 순간과 전성기가 수리남이 낳은 혈통에 의해 이뤄진 셈이다.

◇ '토탈 사커의 극한'을 보여준 수리남 혈통, 프랑크 레이카르트-뤼트 훌리트

(사진=네덜란드 왕립 축구 협회 홈페이지/좌 프랑크 레이카르트, 우 뤼트 훌리트)
(사진=네덜란드 왕립 축구 협회 홈페이지/좌 프랑크 레이카르트, 우 뤼트 훌리트)


시작은 프랑크 레이카르트와 뤼트 훌리트였다. 수리남 출신 아버지를 둔 프랑크 레이카르트와 뤼트 훌리트는 역대 최강의 팀 중 하나로 꼽히는 1980년대 AC밀란에서 활약했다. ‘위트레흐트의 백조’ 마르코 반 바스텐과 함께, ‘오렌지 삼총사’라는 이름으로 AC밀란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두 선수가 펼친 활약은 국가대표팀까지 이어졌다. 프랑크 레이카르트와 뤼트 훌리트는 마르코 반 바스텐과 함께 1988년 유로 우승컵을 네덜란드에 안겼다.

프랑크 레이카르트와 뤼트 훌리트는 ‘토탈 사커’를 극한으로 승화한 선수들이었다. 프랑크 레이카르트는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을 시작으로 수비지역의 모든 포지션을 완벽히 소화했다. 뛰어난 공격 재능과 초인적인 활동량을 가져 윙어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등 공격력도 출중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과 AC밀란의 ‘마지막 벽’으로 불리며 위용을 과시했다. 명실상부한 80년대 최고 수비수 중 하나였다.

뤼트 훌리트는 말 그대로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정석 자체였다. 센터백과 골키퍼를 제외하고 모든 포지션을 일류로 소화했다. ‘축구의 신’이라 불린 마라도나와 견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1987년에는 월드사커 올해의 선수상, 유럽 최우수 선수상 ‘발롱도르’를 받으며 명실상부한 최고의 축구 선수로 공인받았다.

◇ 수리남 혈통, 유럽을 제패하다.

(사진=AFC AJAX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오른쪽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사진=AFC AJAX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오른쪽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수리남 혈통 선수들의 활약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네덜란드 리그 팀 AFC 아약스(Ajax)가 1995년 UEFA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을 때, 수리남 혈통 선수들인 에드가 다비즈와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클라렌스 셰드로프, 미카엘 레이저허르의 활약이 있었다.

당시 에드가 다비즈와 미카엘 레이저허르는 22세, 패트릭 클루이베르트와 클라렌스 세도르프는 채 20살이 되기도 전이었다. 친정팀 아약스로 복귀한 프랑크 레이카르트의 리더쉽 아래, 고작 10대-20대에 불과한 선수들이 당대 최강이던 AC밀란을 꺾고 우승을 만들었다.

패트릭 클루이베르트는 겨우 18세 나이로 파올로 말디니, 프랑코 바레시 같은 역대 최고 수비수를 상대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결승 골을 기록했다. 클라렌스 세도르프, 에드가 다비즈는 야생마 같이 뛰어다니며 승리에 공헌했다. 프랑크 레이카르트는 패트릭 클루이베르트가 기록한 골을 도왔다. 구(舊) 수리남 혈통이 이룬 축구 역사를 신(新) 수리남 혈통이 이어받는 순간이었다. 아약스와 수리남 혈통 선수들이 거둔 우승은 프랑크 레이카르트가 마지막 선수 생활을 보내면서 함께 이룬 우승이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

유럽의 명문 팀들은 엄청난 재능을 보여준 수리남 혈통 선수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AC밀란, 바르셀로나, 유벤투스, 레알 마드리드 등 다수의 강팀이 영입을 원했다. 하지만 대부분 수리남 혈통 선수들은 유혹을 뿌리치고 1년 더 끈끈함을 과시했다. 클라렌스 세도르프가 삼프도리아로 이적했지만, 1996년 다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라 준우승을 기록했다.

수리남 혈통 선수들은 아약스에 큰 전성기를 선물한 뒤 더 큰 무대로 떠났다. 패트릭 클루이베르트와 에드가 다비즈는 AC밀란을 거쳐 각각 바르셀로나와 유벤투스에 입성했다. 패트릭 클루이베르트는 선수생활 동안 짧은 전성기를 보냈으나, 바르셀로나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면서 우승을 여러번 차지했다.

에드가 다비즈는 유벤투스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바르셀로나에 임대돼 침체에 빠진 팀을 구했다. 바르셀로나는 에드가 다비즈가 겨울 이적 시장에 팀에 합류한 후, 리그 6위에서 리그 2위로 성적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미카엘 레이저허르도 바르셀로나에서 7년간 활약하며 90년대 유럽 최고의 풀백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사진=AFC AJAX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2/클라렌스 세드로프)
(사진=AFC AJAX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2/클라렌스 세드로프)


클라렌스 세도르프는 한국 나이로 40세까지 선수로 활약했다. 수리남 혈통 선수 중 가장 복 받은 선수 생활을 보냈다. 아약스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두고 레알 마드리드와 AC 밀란에서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AC밀란에서는 2번이나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해 유럽 정상을 4번이나 경험했다. 클라렌스 셰드로프는 각기 다른 3팀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4번 달성한 최초의 선수였다.

아약스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던, 수리남 혈통 선수들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다시 뭉쳤다. 1998년 월드컵 4강, 2000년 유로 4강을 기록하며, 메이저 대회에서 2연속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 새롭게 시작되는 수리남 혈통의 전설

(사진=리버풀, 아약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좌측부터 버질 반다이크, 위고르 바이날둠, 저스틴 클루이베르트)
(사진=리버풀, 아약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좌측부터 버질 반다이크, 위고르 바이날둠, 저스틴 클루이베르트)


수리남 혈통 선수들의 활약은 2000년대 초 점차 옅어지기 시작했다. AC밀란과 맨체스터 시티에서 활약한 니헬 데 용을 제외하면 상위 레벨에서 오래 활약한 선수가 적었다. 기대를 받았던 로이스턴 드렌테, 라이언 바벨은 생각보다 성장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좋은 재능을 가진 수리남 혈통 선수가 속속들이 등장하는 중이다.

최근 리버풀로 이적한 버질 반다이크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비수다. 2018년 1월 이적시장에서 1,000억이 넘는 이적료를 기록하며 이적했다. 버질 반다이크는 이적료에 걸맞게 많은 감독과 팀이 원하는 선수다. 강인한 체력, 발밑 기술, 수비력과 공중 장악력 등 중앙 수비수로 빠지는 능력이 없다. 빌드업과 공격적인 플레이 모두에 능하고 193cm에 달하는 거대한 체격에 발까지 빠르다. 가히 세계 최고 수준에 가까운 수비수 자원이다. 과거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야프 스탐'이나 '프랑크 레이카르트'와 비교될 정도로 성장햇다. 버질 반다이크는 수리남계 출신 어머니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

버질 반다이크와 함께 리버풀에서 뛰고 있는 위고르 바이날둠도 수리남계 스타 플레이어다. 지난 시즌 리버풀 중원에 큰 힘을 보태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으면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으나, 몇몇 경기에서 보여주는 활약은 축구 팬들에게 기대감을 갖게한다.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지만, 뉴캐슬 유나이티드 시절에는 프리미어리그에서 10골 이상 기록할 정도로 득점력 있는 선수다. 리버풀에서는 위르겐 클롭 감독의 지도로 중원 장악에 힘쓰며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인 레벨에서 활약하지 않는 선수 중에는 저스틴 클루이베르트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저스틴 클루이베르트는 패트릭 클루이베르트의 아들이다. 중앙 공격수로 활약한 아버지와 달리, 저스틴 클루이베르트는 윙어 포지션에서 뛰고 있다. 저스틴 클루이베르트는 2016-17시즌 소속팀 아약스가 UEFA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만났을 때, 조세 무리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큰 이슈를 만들기도 했다. 그만큼 저스틴 클루이베르트가 가진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얼마나 많은 강팀과 축구팬이 저스틴 클루이베르트에 관심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빠른 시일 내에 유럽 명문 팀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높다.

축구로 세계를 한번 호령한 수리남 혈통이, 전설의 발자취를 따라서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켜고있다.

이정아 기자 news@seconomy.kr
<저작권자 © 공유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