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 부진, 미중 무역갈등 심화 등 대외 여건 악화로 둔화된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본의 수출규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R&D(연구개발) 및 산업 분야 투자를 통한 신(新)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는 29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올해 본예산 469조6000억원보다 43조9000억원(9.3%) 늘어난 513조5000억원 규모의 '2020년 예산안'을 확정했다. 정부가 이 같은 내용의 '2020년 예산안'을 의결하고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이를 법정 시한인 12월2일까지 심의·의결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내년에는 세수 호황까지 막을 내리면서 국세 수입마저 쪼그라들지만 경제체질 개선과 미래성장동력 확충을 위해 재정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홍남기 겅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와 내년도 경제가 어려운데 이를 재정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서 다시 성장 경로로 복귀시키는 게 장기적으로 재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2년 연속 9%대 지출증가율을 설정했는데 경제적 어려움을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로 보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내년도 보건·복지·노동의 예산안을 올해(161조원)보다 20조6000억원 많은 181조6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역대 최대 증가율인 12.8% 증액된 셈이다. 국민연금급여지급(3조9841원), 주택구입·전세자금(1조8000억원), 기초연금지급(1조6813억원), 구직급여(2조3330억원) 등이 증액됐다.
보건·복지·노동 예산 중 일자리가 차지하는 예산은 25조8000억원으로 올해(21조2000억원)보다 21.3% 늘어났다.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청년내일채움공제 등을 지원하고 노인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를 13개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중소기업 출산 육아기 대체인력 지원금을 60만원에서 80만원으로 인상하고 직장 어린이집도 충원한다.
핵심 소재·부품·장비 자립화 및 인공지능(AI) 인재 육성 등을 위해 R&D 예산은 올해 20조5000억원보다 17.3%(3조6000억원) 늘어난 24조1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전략 핵심소재 자립화 기술개발에 1581억원, 소재부품지원센터 15개의 기반구축을 위해 990억원을 투자한다. 인공지능융합 선도프로젝트에도 신규 139억원을 쓴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은 23조9000억원으로 올해 18조8000억원보다 27.5% 증가했다. 이번 12개 분야 중 예산 증가 폭이 가장 크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관련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법률자문을 받고 통상정보센터를 설치한다. 창업·벤처에 역대 최대규모인 5조5000억원의 재정을 지원한다.
환경 분야는 올해(7조4000억원)보다 19.3% 늘어난 8조8000억원을 편성했다. 미세먼지 저감 투자를 확충하고 스마트 상수도 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안전 투자 소요 중심으로 증액했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22조3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2.9% 늘렸다. 노후 SOC 개량, 국가균형발전프로젝트 추진, 신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인프라 등을 중심으로 예산을 확대했다.
농어업 스마트화 지원, 공익형 직불제 도입 등을 위해 농림·수산·식품 분야는 올해보다 4.7% 증가한 21조원으로 편성됐다. 문화·체육·관광 분야 예산은 8조원으로 올해(7조2000억원)보다 9.9% 늘었다. 5G, 한류 기반 문화·관광 콘텐츠 개발 및 보급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교육은 고교무상교육, 대학혁신 등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한다. 이를 위해 예산도 올해보다 2.6% 늘어난 72조5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외교·통일 분야의 내년 예산은 20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4.0% 늘려 편성했다. 국방 분야는 장병 봉급 인상, 첨단 무기체계 확충 소요 등으로 최초 50조원을 돌파한 50조2000억원이 편성됐다.
일반·지방행정 예산 배정액도 76조6000억원에서 80조5000억원으로 3조9000억원(5.1%) 늘어난다. 이중 지방교부세는 52조3000억원으로 2000억원(0.3%) 감액했다.
내년 총수입은 482조원으로 올해 476조1000억원보다 1.2%(5조9000억원)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업황 부진, 재정 분권 등에 따른 세수 둔화 탓이다. 이에 따라 국세수입도 올해 294조8000억원에서 내년 292조원으로 0.9%(2조8000억원) 쪼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올해 -37조6000억원보다 34조5000억원이나 감소한 -72조1000억원으로 규모가 커진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규모도 올해 -1.9%에서 내년 -3.6%로 1.7%포인트 감소 폭이 확대된다.
국가채무는 805조5000억원으로 올해(740조8000억원)에 비해 64조7000억원 늘어난다. 이중 적자 국채 규모는 올해 336조8000억원에서 내년 397조원으로 60조2000억원으로 급증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올해 37.1%에서 내년 39.8%로 늘어나며 4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GDP에서 조세수입(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인 조세부담률은 올해 확정예산 기준인 19.6%에서 내년 19.2%로 내려간다. GDP에서 국민이 낸 세금에 사회보장부담금 등을 합한 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인 국민부담률도 올해 26.8%에서 내년 26.7%로 낮아진다.
구윤철 2차관은 "지금은 국채발행해서 (재정을) 투입하지만, R&D나 소재·부품·장비 산업 자립화가 잘됐을 경우 한국이 새로운 단계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성장모멘텀인 R&D 산업에 돈을 많이 넣어 경제가 선순환된다면 세수는 높아지고 (국가채무비율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은 공유경제신문 기자 news@s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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