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이 홀로 지내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A(58·여)씨와 B(83·여)씨는 지난 5월 노인들을 상대로 범행을 벌이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달 24일 오전 9시 30분께 전북 익산시 한 시장에 승용차를 타고 나타났다.
범행 장소를 쉽게 옮겨 다니기 위해 차를 운전해줄 일당 15만원의 운전기사도 구했다.
시장에서는 장을 보려고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선 노인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은 다리를 절룩거리던 C(73·여)씨를 발견하고 잽싸게 발걸음을 옮겼다.
C씨에게 다가선 A씨는 B씨를 가리키며 "이분이 서울대병원에서 퇴직한 용한 의사다. 다리가 불편한 것 같은데 병을 낫게 해주겠다. 돈을 준비해달라"고 꼬드겼다.
여성인 데다 고령이어서 물정에 어두웠던 C씨는 선뜻 A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A씨는 C씨에게 치료의 대가로 모든 가족의 '나이'를 합한 금액을 요구했다.
"그래야 제대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댔다.
C씨 가족의 나이를 합한 수는 모두 400. 400만원이 수중에 없었던 C씨는 통장에 있는 돈을 인출하기 위해 이들과 함께 은행으로 이동했다.
돈을 인출한 C씨가 A씨에게 돈을 건네려는 순간 이들은 돈을 거부했다.
대신 이들은 C씨에게 "이 돈을 품고 기도를 올리라"고 했다.
전직 서울대병원 의사가 의술 대신 주술을 주문한 황당한 경우였다.
하지만 C씨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이들은 나아가 치료를 해주겠다며 돈 봉투로 C씨 몸 구석구석을 때렸다.
C씨의 등을 때릴 때 이들은 준비한 '가짜 돈 봉투'와 진짜 돈 봉투를 바꿔치기했다.
"기도를 올려도 병이 낫지 않으면 연락하라"며 C씨에게 휴대전화 연락처를 건넨 뒤 이들은 홀연히 사라졌다.
뒤늦게 돈 봉투가 바뀐 사실을 안 C씨는 아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 5월부터 최근까지 익산, 서울, 경기도 파주 등 전국을 돌며 16차례 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몸이 불편한 노인을 상대로 뜯은 금액만 1천500만원에 달했다.
이들은 주로 노인이 자주 찾는 재래시장이나 역 주변에서 절도 행각을 이어갔다.
전직 의사를 자처한 B씨는 이 계통에서 알아주는 동종 전과 6범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경찰에서 "남편이나 가족 없이 살다 생활고에 시달려 노인들의 돈을 훔쳤다"고 진술했다.
익산경찰서는 14일 특수절도 혐의로 A씨와 B씨를 구속했다.
경찰은 이들의 여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김민지 기자 news@s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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