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의 디지털 문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벤클러는 국가와 시장 사이의 낡은 대립을 뛰어넘어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는 경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벤클러에 따르면 우리는 대혼란을 불러올 수 있는 글로벌 문화 혁명의 초기 단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유 재산, 특허, 자유 시장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를 효율적으로 조직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닙니다. 오늘날 커먼즈는 지난 40년에 걸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극복할 가장 유력한 대안을 제공합니다.”
▷바트 그루전 플라나(Bart Grugeon Plana): 오늘날 세계 지도자들의 정치 논쟁을 보면, 경제를 조직하는 방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가진 자유 시장에 맡기는 것이 최선인지 아니면 거대한 행정부를 가진 국가에 맡기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한 해묵은 논쟁으로 후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교수님은 이 낡은 패러다임을 뛰어넘을 것을 촉구합니다.
▶요하이 벤클러, 하버드 로스쿨 교수: 이 논쟁에서는 양측 모두가 널리 통용되지만 근본적으로 잘못된 가정—즉, 사람들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존재라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우리의 경제 모델은 17세기와 18세기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와 애덤 스미스의 관념에서 비롯된 낡은 인간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저의 입장은 우리 경제 체제 전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새로운 원칙에 따라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과학, 생물학, 인류학, 유전학, 심리학 분야에서 수행된 연구는 사람들이 해묵은 가정보다 훨씬 더 협력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은 이러한 인간적 가치를 끌어내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기존의 사회 체제와 경제 체제—위계적 기업 구조와 여러 교육 제도 및 법률 제도—는 대부분 이처럼 부정적인 인간상에서 출발합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처벌 또는 보상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통제 메커니즘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분명한 소통의 문화를 바탕으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화합에 기초한 체제에서 삶을 영위할 때 훨씬 큰 동기 부여를 느낍니다. 다시 말해, 관대함과 협력의 감정을 북돋우는 방법을 아는 조직은 인간이 단지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상정하는 조직보다 훨씬 더 효율적입니다.
▷기업이나 조직 내에서는 그것이 가능하겠지만, 과연 거시 경제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인터넷은 시장이 주도한 것도 아니고 국가가 조직한 것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창의적 생산 방식을 탄생시켰습니다. Linux, 온라인 백과사전 Wikipedia,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다양한 소셜 미디어, 여러 가지 온라인 형태의 협력 등을 비롯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는 10년 전만 해도 누구나 불가능하리라고 여기던 새로운 협력의 문화를 창출했습니다.
이는 주변부 현상이 아니며, 새로운 사회·경제적 경향의 선봉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사유 재산과 특허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개인들 사이의 느슨하고 자발적인 협력에 기초한 새로운 형태의 생산입니다. 그것은 21세기에 부응하는 커먼즈의 한 가지 형태—디지털 커먼즈—입니다.
▷어떤 점에서 그토록 혁명적인가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를 예로 들어봅시다. 이는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더라도 특정한 조건에 따라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허용하는 라이선스입니다. 지식을 누구나 이용하고 확장할 수 있는 커먼즈(공유재)로 간주하는 매우 유연한 시스템이지요. 이는 개인 소유의 저작권을 옹호하는 철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 방식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지식과 정보의 공동 관리가 가능할 뿐 아니라 사유 라이선스에 “묶일(locked-up)” 때보다 더 효율적이며, 창의성이 훨씬 풍부하게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후 경제를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지 시장이 관리해야 하는지 논의가 분분한 가운데, 인간은 누구나 제 몫만 챙기려고 하기 때문에 집단 조직에서 출발한 모델은 필연적으로 비효율성과 재앙을 초래한다는 믿음이 팽배했습니다. 이러한 분석은 그 이후 경제적 규제 철폐와 민영화·사유화로 이어졌고, 2008년부터 그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협력의 새로운 문화는 전혀 새로운 가능성의 창을 열어줍니다. 오늘날 커먼즈는 난관에 봉착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유력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어쨌든, 사유화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겠습니까? 트럼프와 브렉시트는 사유화의 미래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커먼즈는 주로 천연 자원과 관련된 공동 관리 모델입니다. 이것이 극히 복잡한 현대 경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나요?
▶커먼즈는 수백 년 전부터 사용된 개념이지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에 의해 하나의 지적 전통으로 구체화되고 심화되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커먼즈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운동과 디지털 커먼즈의 문화 전반을 통해 새로운 차원을 획득했습니다. 오스트롬은 수백 건의 연구를 토대로, 시민들이 힘을 모으고 정부와 협의하여 생태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인프라와 자원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커먼즈는 지역사회의 다양성과 지식과 부를 의사결정 과정에 통합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의 동기와 헌신이 지닌 복잡성을 두루 고려하는 반면, 시장 논리는 모든 것을 가격으로 환원하고 이익에 의해 촉발되지 않은 동기나 가치에 몰이해합니다.
오스트롬은 커먼즈 관리 모델이 강력한 정부에 의존하는 모델보다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의 측면에서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참조: 사회주의인가 공산주의인가: 시장과 가격 메커니즘에 관하여(Socialism or Communism, or On Markets and Their Price Mechanism)
현대 경제에서 커먼즈의 예에는 앞서 언급한 디지털 커먼즈 외에도 Wi-Fi 스펙트럼의 관리 모델이 포함됩니다. 사용자 라이선스를 요구하는 FM-AM 라디오 주파수와 달리, 누구든지 정해진 규칙을 지키면 Wi-Fi 스펙트럼을 무료로 사용하고 어디에나 라우터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방성과 유연성은 통신 부문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입니다. 그 덕분에 Wi-Fi는 병원, 물류 센터, 스마트 전력망 등 가장 진보한 경제 부문에서 필요 불가결한 기술이 되었습니다.
학술, 문화, 음악, 정보 영역에서는 지식 또는 정보가 점차 커먼즈로 취급되어 무상으로 공유되고 있습니다. 뮤지션들은 이제 음악의 저작권이 아니라 콘서트에서 수입을 올립니다. 학술 및 논픽션 저자들은 교육, 자문 또는 연구 기금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자신의 저작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로 출판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에서도 이와 유사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커먼즈 관리 모델의 본질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커먼”의 모든 구성원이 상품 또는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상품과 서비스의 이용이 조직되는 방식을 공동으로 합의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장 논리는 출발점이 전혀 다릅니다. 이는 시장과 커먼즈가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나요?
▶커먼즈는 모든 경제 체제의 토대입니다. 지식과 정보, 도로, 도시의 공공 공간, 공공 서비스, 통신 등을 누구나 이용할 수 없다면 사회 조직이 불가능합니다. 시장은 끊임없이 커먼즈를 사유화하려고 시도하지만, 시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커먼즈의 공동 이용이 불가결합니다. 세간에는 커먼즈에 대해 근본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열린 사회의 근간이 되는 구성 요소입니다. 그러나 커먼즈와 시장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업은 재정 수익을 극대화하여 주주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세라고 하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사회의 특정 소수 계층의 이익을 위해 40년 동안 시행된 신자유주의 정책과 법률의 산물일 뿐입니다. 위키디피아(Wikipedia)는 사람들이 세계 공동체 전체를 위해 가치를 창조하는 보편적 공익에 자발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매우 다양한 동기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디지털 커먼즈의 본보기는 새로운 협업 경제의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유사한 프로젝트를 현실 경제에서 추진하도록 고무할 수 있습니다.
커먼즈를 보호하고 그에 기여하는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커먼즈를 중심에 두는 사회는 커먼즈와 시장 논리, 민간과 공공, 영리와 비영리를 망라하는 다양한 형태의 경제 조직들이 공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러한 융합을 통해, 전혀 다른 동기와 목표를 가지고 경제 활동을 펼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통합되는 경제 체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경제가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이라는 추상적 관념에 의해 가동될 것이라는 믿음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교수님은 커먼즈의 미래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인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는 지금보다 더 낙관적이었습니다. 커먼즈는 다양한 경제를 조직하는 데 극히 중요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경제 부문에서 확장되고 보호되어야만 합니다. 커먼즈 모델에 따른 자주적 조직 결성(self-organization)의 고무적인 사례는 적지 않지만, 이들의 성장이 자동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시장 논리를 뛰어넘어 경제 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려는 결의, 커먼즈를 뒷받침하는 입법 구조, 협동조합 및 다양한 협력 모델 등에 바탕을 둔 규제가 필요합니다.
그와 동시에, 커먼즈 논리에 근거한 비즈니스 모델로 돈을 버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플랫폼 기반의 협력주의(Platform Cooerativism)”를 추구하는 운동은 매우 흥미로운 발전입니다. 이들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운영되고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협력하는 새로운 협동조합 모델을 개발합니다. 이는 디지털 경제에 시장 논리를 적용하는 Uber나 Airbnb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을 견제하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 일의 미래에 대한 복잡한 논쟁이 제기됩니다.
▶자동화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돈”과 “일”을 서로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는 보다 폭넓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일”을 하는 동기는 매우 다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편적 기본 소득은 다양한 동기가 가능하도록 해주고 근무 일수 단축이 옵션으로 주어지는 보다 유연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합니다.
우리는 엄청난 과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갈 길을 보여주는 상세한 안내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제 위기가 계속되고 긴축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은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실험하는 데 유리한 여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Wikipedia도 처음에는 “실제로만 작동하고 이론상으로는 완전히 엉망이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과두지배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이론 체계에 굴복하지 않고 함께 협력하여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게 해주는 이론적 틀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커먼즈는 진정한 참여의 경제적 생산 체제를 구축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대안입니다. 커먼즈는 글로벌 문화 혁명을 촉발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료: Sharehub, shareable, Q&A: Yochai Benkler on the Benefits of an Open Source Economic System. Bart Grugeon Plana
한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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