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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산책] 기부에 대한 선량한 오해

기사입력 : 2020-08-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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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신문 박재준 기자]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기부 문화의 성격은 올바르며, 제대로 정착되어 있는가.
지금까지 기부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빠듯하게 살면서도 평생 동안 한푼 두푼 모은 것을 고스란히 고아원이나 학교에 내놓는 특별한 소수가 하는 일로 한정되어 있었다.

모두가 자신이 가진 범위에서 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자연스런 문화로 정착되지 못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부에 대한 세 가지 오해에서 비롯된다.

기부에 대한 3가지 오해

첫 번째 오해는 기부를 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자격이다. 돈이 ‘있는’ 사람들이거나, 돈이 넉넉지 못해도 타인에 대한 사랑과 동정심이 가득한 사람들이 바로 기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오해다.

두 번째 오해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를 기부의 원칙이라고 보는 태도다. 안 하면 모를까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내놓을 경우 떠벌리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해야 그것이 진정한 기부라는 생각이 보편적인 우리의 시각이다.

세 번째 오해는 돈과 명예가 있는 사람 혹은 조직이라면, 가령 대기업의 CEO, 정치가, 연예인 등의 고소득층은 적어도 재산의 상당 부분을 사회를 위해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기부에 대한 이러한 사고는 선한 행위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한다는 의무론적 관점에서 매우 단편적으로 접근했다는 한계가 있다.
사진=Clipartkorea
사진=Clipartkorea

실제로 나누고 봉사는 사람들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의해서 기부를 하고, 그로 인해 즐거운 마음을 갖는 매우 단순한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또 돈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몫을 다른 사람에게 꼭 베풀어야 한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주고받는 행위로만 한정짓는 기부에 대한 지금의 우리 시각은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양자에게 더 이상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지 못한다.

또한 기부를 마음이 아닌 실천으로 행할 수 있는 동기도 되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올바르기 때문에 행해야 한다는 윤리적인 강압에서 벗어나 기부를 좀 더 현실적으로 바라볼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해마다 겨울이면 곳곳에서 구세군 냄비가 우리에게 따뜻함을 강요하지만 냄비 속 천 원들이 어디에 쓰이는지 우리들에게 설명해준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만약 우리의 천 원이 어떤 불행의 장소에 옮겨져 행복의 열매를 맺게 하는 씨앗의 역할을 하는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천 원만을 내놓겠는가. 그리고 그 천 원이 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천 원을 집어넣는 손이 지금처럼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부가 선한 행위라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주는 사람에게 또한 받는 사람에게 어떤 이득을 주는지 그 실질적인 힘을 깨닫는 일일 것이다. 주고받는 행위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더 큰 파장을 일으키는 강력한 파급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현실 속에서 알 권리가 있다.

나눔과 성공 사이의 함수관계를 풀다

봉사하는 사람이 더 즐겁게,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들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만족감,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 그리고 감사와 인정을 받을 때의 즐거움이라는 심리적 만족감이 나눔의 일차적인 효과이다.

그러나 나눔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최근에 기업들은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사회와의 연대를 이루고 있다. 이때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더 이상 기업의 부정·부당행위를 만회하기 위한 수동적 기부 활동이 아닌 사회와 통합된 기업의 핵심 경영전략이 되고 있다. 기업이 자발적 시민단체와 연계하여 사회공헌활동을 벌이고, 이를 기업의 대외적 홍보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지금의 추세가 이를 증명한다. 최근 기부나 나눔의 활동을 기업의 긍정적 이미지로 활용해서 구매력을 높이려는 광고들이 속속 늘어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부의 잠재력은 기업의 경우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갑자기 거대한 상속자가 된 ‘벼락부자’들이 상속받은 돈은 물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길로서 기부를 선택하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하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그 돈은 빵과 교육의 혜택에 굶주린 세계의 아이들에게, 자식들에게 버림 받은 무의탁 노인들에게, 문화적 환경이 미비한 한 지역사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실질적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뿐인가. 한푼 두푼 모아진 시민들의 정성은 국가의 복지 혜택이 미치지 못한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하게 된다.

‘행복한 기부’의 행복은 바로 이러한 개인과 단체, 그리고 시민사회에 내재하는 독립적 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그것이 기대한 만큼 크지 않을 때, 그것을 주어야 하는 사람 혹은 기관의 능력을 평가절하한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스스로를 받는 자의 위치에만 머물게 해서 자신의 능력 또한 함께 무시해버리고 만다는 사실이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능력 없는 자로 만드는 이러한 관계는 지금의 우리에게 결코 생산적이지 않다. 바로 이 관계를 부수고 새롭게 만들어내는 힘이 기부다. 받는 자에서 주는 자로, 만들어진 것을 이용하는 자에서 무언가를 창조하는 자로, 불평하는 자에서 만족하는 자로 만드는 긍정적 연료가 기부다.

남의 것을 빼앗아서 내가 가진 것을 불리는 산술 방식이 아니라 내 것 하나를 줌으로써 새로운 이윤을 창출한다는 나눔의 방식. 이것은 경쟁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의 개념을 재해석하는 열쇠다.

참고자료:Nach der Ego-Gesellschaft : wer gibt gewinnt ; die neue Kultur der Gro 저자 Thomas Ramge

박재준 공유경제신문 기자 news@s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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