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열린 국민성장펀드 기금운용심의회에서 업스테이지의 차세대 AI 모델 개발 사업,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 퓨처그라프의 새만금 구형흑연 생산공장 구축 사업, 에스티젠바이오의 바이오시밀러 생산설비 증설 사업, 후성의 반도체용 고순도 불화수소가스 생산시설 증설 사업 등 5건의 자금 지원을 승인했다고 6일 밝혔다.
이번 승인으로 국민성장펀드의 1∼4월 누적 승인액은 8조3700억원으로 늘었다. 지원 방식별로는 직접투자 1조2천억원, 인프라투융자 3조8천억원, 저리대출 3조3700억원이다. 이 가운데 첨단전략산업기금 누적 승인액은 3조8500억원이다.
가장 큰 비중은 AI 분야에 실렸다. 국민성장펀드는 기업용 AI 솔루션과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하는 업스테이지의 차세대 AI 모델 개발 사업에 첨단전략산업기금 1천억원을 직접 투자한다. 업스테이지의 전체 증자 규모는 잠정 5600억원이다. 산업은행 본체가 300억원, SK네트웍스와 사제파트너스, 우리벤처파트너스, 미래에셋 등 민간투자자가 4300억원을 부담한다.
업스테이지는 2020년 10월 설립된 AI 벤처기업이다. 문서 정보를 AI가 인식하고 학습할 수 있는 디지털 데이터로 바꾸는 ‘도큐먼트 AI’와 기업 내부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동하는 기업용 LLM에 강점을 갖고 있다. 정부는 업스테이지가 국내 AI 모델 벤처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을 평가받은 유니콘 기업이며,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평가를 통과한 유일한 중소·벤처기업이라고 설명했다.
업스테이지 투자는 정부가 강조해 온 ‘소버린 AI’ 전략과 맞닿아 있다. 소버린 AI는 국가가 자체 인프라와 데이터, 인력을 바탕으로 독자 AI 역량을 확보하는 것을 뜻한다. 업스테이지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대표 포털과 협력해 수억건 규모의 검색 데이터와 장기간 축적된 문맥 데이터를 확보하고, 한국어 특화 모델 성능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도 승인됐다. 이 사업은 민관 합동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전남 해남군 솔라시도 데이터센터파크 일원 약 5만㎡ 부지에 AI 데이터센터를 조성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GPU와 NPU 등 첨단 AI반도체 1만5천장을 도입해 산업계와 학계, 연구계의 AI 연구개발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국가 AI컴퓨팅센터의 자본금 규모는 4천억원이다. 민간 출자자가 2840억원을 부담하고, 재정 800억원, 첨단전략산업기금 180억원, IBK국민성장인프라펀드 180억원이 투입된다. SPC는 향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 최대 2조원 이상의 대출도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첨단전략산업기금 대출 규모와 시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차전지 분야에서는 포스코퓨처엠 자회사 퓨처그라프가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퓨처그라프는 전북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 리튬이온 배터리 음극재 핵심 원료인 구형흑연 생산공장을 구축한다. 총사업비는 약 4천억원이다. 국민성장펀드는 첨단전략산업기금 2천억원과 산업은행 본체 500억원을 합쳐 2천500억원을 저리대출로 지원한다.
구형흑연은 비늘 모양의 인상흑연을 구형으로 가공한 소재다. 이차전지 제조원가의 약 10%를 차지하는 음극재 생산에 필요한 핵심 중간재다. 배터리 에너지밀도와 수명에 영향을 주는 소재이기도 하다. 퓨처그라프는 새만금 공장을 통해 연간 3만7천t 규모의 구형흑연 생산 기반을 마련할 예정이다. 생산된 구형흑연은 세종 공장으로 공급돼 최종 음극재로 가공된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에스티젠바이오의 바이오시밀러 위탁생산 설비 증설 사업이 승인됐다. 에스티젠바이오는 인천 송도 첨단산업 클러스터에서 항체·단백질 기반 바이오의약품의 공정 개발과 위탁생산을 하는 중견기업이다. 사업 규모는 약 1100억원이다. 국민성장펀드는 첨단전략산업기금 650억원과 산업은행 본체 200억원을 합쳐 850억원을 8년 장기·저리대출로 지원한다.
에스티젠바이오는 이번 투자로 원료의약품과 완제의약품 생산시설을 확충한다. 금융위는 설비 증설이 마무리되면 원료의약품 최대 생산능력이 44%, 완제의약품 최대 생산능력이 170%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2024년 327억달러에서 2035년 723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는 울산 남구 장생포산업단지에 있는 후성이 지원을 받는다. 후성은 반도체 식각과 세정 공정에 쓰이는 고순도 불화수소가스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총사업비는 약 210억원이며, 국민성장펀드는 첨단전략산업기금 165억원을 8년 장기대출로 지원한다. 후성은 반도체 수요 증가에 맞춰 생산시설을 늘릴 계획이다.
불화수소가스는 반도체 공급망에서 전략적 의미가 큰 소재다. 일본 수출규제 이후 국산화 필요성이 커진 대표 품목으로 꼽힌다. 정부는 후성이 국내 반도체 완성 대기업에 불화수소가스를 공급하는 협력사라는 점에서 이번 지원이 소재 국산화와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강성호 금융위원회 국민성장펀드총괄과장은 “국민성장펀드는 산업 파급효과가 크고 산업정책적 의미가 있는 사업을 선별해 메가프로젝트로 발표하고, 첨단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자금 수요를 상시적으로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가 생산적 금융으로 자리 잡으려면 승인 규모보다 실제 집행 성과가 중요하다”며 “AI 컴퓨팅 인프라와 배터리 소재, 바이오 생산설비, 반도체 특수가스 지원이 기술력과 생산능력, 수출, 공급망 안정으로 이어지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혜린 기자 rin7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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