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은 사라진 학생 강민서를 중심에 놓고 진실의 조각을 한 겹씩 벗겨낸다. 겉으로는 한 학생의 실종과 학교 내부의 비극을 좇는 미스터리처럼 보이지만, 서사가 깊어질수록 독자가 맞닥뜨리는 것은 훨씬 더 불편한 현실이다. 누군가의 폭력, 누군가의 방조, 누군가의 외면이 서로 얽히며 아이 한 명의 삶을 지워내는 과정이 집요하게 드러난다. 이 지점에서 ‘지워진 아이들’은 범인을 찾는 소설을 넘어, 사회가 어떻게 진실을 삭제하는가를 추적하는 사회파 소설로 확장된다.
작품의 강점은 사건을 소비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 학교 폭력을 자극적 장치로 쓰지 않고, 그 폭력이 유지되고 은폐되는 구조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학교 당국의 축소와 자기보호, 체면을 앞세운 어른들의 계산, 피해의 신호를 보고도 모른 척한 주변의 침묵이 촘촘히 포개진다. 이 소설에서 진짜 공포는 한순간의 폭력이 아니라, 폭력을 알아보고도 움직이지 않는 시스템에 있다. 사회파 장르가 현실의 균열을 포착하는 데서 힘을 얻는다면, ‘지워진 아이들’은 그 장르적 미덕을 비교적 또렷하게 붙든 작품이라 할 만하다.
주인공이 기자라는 설정도 눈길을 끈다. 진실을 좇는 인물의 직업적 본능은 사건을 파헤치는 동력으로 작동하지만, 동시에 기록과 보도의 한계도 되묻는다. 진실은 밝혀져야 하지만, 진실을 둘러싼 벽은 늘 개인보다 크다. 이 구도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전형적 긴장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학교와 언론, 제도와 여론이 맺는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덮는가. 누가 말하고 누가 침묵하는가. 소설은 그 질문을 인물의 동선과 사건의 압박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남기는 울림은 제목에 응축돼 있다. ‘지워진 아이들’은 실종되거나 사라진 아이들을 뜻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애초에 보였어야 할 고통을 보지 않았던 어른들, 들어야 할 신호를 듣지 않았던 공동체가 아이들을 사회적으로 삭제해 왔다는 고발에 가깝다. 그래서 이 소설의 핵심 문장은 “아이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우리가 지웠을 뿐”이라는 선언으로 수렴된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방관의 책임, 침묵의 책임, 제도의 책임을 독자 앞에 무겁게 올려놓는 문제제기다.
문장과 서사의 방향 역시 사회파 장르의 목적에 충실하다. 사건 해결의 쾌감보다 사건 뒤에 남은 상처와 구조적 모순을 더 오래 응시한다. 파편화된 기억, 감춰진 관계,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는 진술이 이어지며 독자는 추리의 긴장 속에서도 끊임없이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이 불편함이야말로 이 소설의 미덕이다. 읽는 재미에 머물지 않고, 읽은 뒤의 책임까지 독자에게 넘기기 때문이다.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메시지가 선명한 만큼 일부 대목에서는 주제의식이 앞서 나가는 인상도 남긴다. 그러나 그 직진성이 오히려 이 작품의 성격을 분명히 한다. ‘지워진 아이들’은 우회하지 않는다. 학교 폭력을 개인의 비극으로 축소하지 않고, 그 뒤에 선 사회의 무관심과 제도적 무책임을 정면으로 겨눈다. 사회파 미스터리가 왜 필요한가를 묻는다면, 이 소설은 한 가지 답을 내놓는다. 현실이 끝내 다 말하지 못한 것을 소설이 대신 끝까지 추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워진 아이들’은 범죄의 진실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민낯을 추적하는 작품이다. 학교 폭력의 어두운 현장을 넘어, 그 폭력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의 침묵을 기록한다. 장르적 긴장과 사회적 문제의식을 함께 붙든 이 소설은 한국형 사회파 미스터리의 가능성을 환기한다. 독자에게 남는 것은 단순한 서늘함이 아니다. 우리가 외면한 아이들이 실제로는 어디서, 어떻게 지워져 왔는지 돌아보게 하는 묵직한 자책이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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