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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중복상장, 더 미룰 수 없는 자본시장의 숙제

기사입력 : 2026-03-1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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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지난 12일 한국경제인협회 컨퍼런스센터 2층 사파이어홀에서 ‘중복상장과 소수 주주 보호: 일본 사례를 통한 정책적 시사점’ 세미나를 열었다(출처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지난 12일 한국경제인협회 컨퍼런스센터 2층 사파이어홀에서 ‘중복상장과 소수 주주 보호: 일본 사례를 통한 정책적 시사점’ 세미나를 열었다(출처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공유경제신문 김승한 기자] 중복상장은 한국 자본시장이 오래 외면해온 불편한 문제다. 기업은 성장 자금 조달이라고 말했지만, 시장은 그때마다 모회사 가치가 깎이고 주주 권리가 뒤로 밀리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상장사가 키운 핵심 사업을 자회사로 떼어내 다시 증시에 올리는 구조는 그 자체로 낯설지 않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누구의 이익이 우선했느냐다. 기업은 새로운 투자 재원을 확보하고 사업 가치를 재평가받을 수 있다. 반면 모회사 주주는 기업의 성장 과실을 함께 누리리라 기대하고 투자했지만, 어느 날 핵심 사업의 상당 부분이 별도 회사로 분리돼 다시 상장되는 상황을 맞는다. 시장이 이를 ‘쪼개기 상장’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중복상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한 원인으로 거론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국내 증시가 제값을 받지 못하는 배경에는 낮은 주주환원, 불투명한 지배구조, 정책 불확실성 같은 복합 요인이 있다. 그중에서도 중복상장은 일반주주가 체감하는 불신의 강도가 유독 큰 사안이다. 회사가 성장해도 그 결실이 기존 주주에게 온전히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경험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시장 신뢰를 갉아먹는 구조가 방치된 셈이다.

최근 정부 안팎에서 중복상장 규제 강화가 거론되는 것도 이런 누적된 피로감과 무관하지 않다. 대기업 계열사나 상장 모회사가 지배하는 자회사의 신규 상장을 원칙적으로 막는 방안이 거론되자 시장이 즉각 반응한 이유도 분명하다. 그만큼 이 문제가 단순한 상장 심사 기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과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산업계의 현실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첨단산업이나 신사업 분야에서는 자회사 상장이 비교적 손쉬운 자금 조달 창구로 활용돼왔다. 규제가 일률적으로 적용될 경우 필요한 투자가 위축되고 기업의 성장 전략이 경직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래서 중복상장 문제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에 가깝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예외를 두더라도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미래 산업이라는 이름 아래 광범위한 예외를 허용하면 규제는 상징에 그칠 수 있다. 둘째, 소수주주 보호 장치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 효력이 있어야 한다. 공모주 배정 방식, 모회사 주주에 대한 보상 장치, 이사회 책임 강화 같은 장치가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으면 제도는 또 다른 형식 논리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자본시장은 기업의 자금 조달 필요 앞에서 주주 권익 문제를 자주 후순위로 밀어왔다. 그 결과는 주가 저평가와 투자자 불신이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자회사를 상장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기존 주주에게 납득 가능한 구조냐를 먼저 따져야 한다.

중복상장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시장이 누구를 위한 시장인지 묻는 문제다. 한국 증시가 밸류업을 말하려면 숫자보다 신뢰를 먼저 세워야 한다. 중복상장 논란을 바로잡는 일은 그 출발점이어야 한다.

김승한 기자 sharegridl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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