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만 이런 사다리는 모든 계층에 고르게 열려 있지 않았다. 비수도권 저소득층일수록 수도권 이주 문턱이 높아 이동의 과실을 누리기 어려운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지역간 인구 이동과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자녀의 평균 소득백분위는 49.8%로, 비이주 자녀의 46.6%보다 높았다.
부모 세대와 비교하면 격차는 더 뚜렷했다. 이주한 자녀의 소득백분위는 부모보다 평균 6.5%포인트 높아진 반면, 이주하지 않은 자녀는 오히려 2.6%포인트 낮아졌다. 지역 이동 여부가 단순한 거주지 변화가 아니라 세대 간 경제력 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이주가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을 완화하는 경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에게 이어지는 흐름이 강해지는 상황에서도, 지역 이동은 이런 고착을 일부 약화하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효과는 누구에게나 같지 않았다. 보고서는 비수도권 출생 자녀에게 수도권으로의 진학·취업 이주가 계층 상향 이동의 유력한 경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문제는 그 과정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수도권 이주에는 학비와 주거비, 생활비, 구직 비용이 함께 수반된다.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될수록 수도권으로 옮길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못할수록 같은 권역 안에서 움직이거나 아예 이동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실제 보고서 분석에서도 이런 차이는 확인됐다. 비수도권 출생 자녀 가운데 부모소득 1분위 자녀는 4분위 자녀보다 권역 내 이주 확률이 12%포인트 높았다.
부모자산 1분위 자녀도 4분위 자녀보다 권역 내 이주 확률이 23%포인트 높았다. 저소득·저자산 가구 자녀일수록 수도권으로 이동하기보다 비교적 비용 부담이 적은 권역 내 이동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의미다.
반대로 수도권 이주 기회는 부모의 경제력에 더 크게 좌우됐다. 비수도권 출생 자녀 가운데 부모자산 4분위 자녀는 1분위 자녀보다 수도권 이주 확률이 43%포인트 높았다. 결국 수도권 이주를 통한 계층 상승의 기회가 부모의 소득과 자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동 자체가 또 다른 불평등의 경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형식적으로는 누구나 더 나은 교육과 일자리를 찾아 이동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동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계층에 기회가 더 집중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동의 자유가 모두에게 주어진 것처럼 보여도, 그 출발선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이미 달라져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기회 격차가 커질수록 이런 현상은 더 뚜렷해질 수밖에 없다. 수도권은 대학과 일자리, 산업과 자산시장이 밀집한 지역인 반면, 비수도권은 일부 거점도시를 제외하면 양질의 교육·고용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곳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나은 기회를 잡고, 이동하지 못하는 사람은 기존 지역 여건 안에 머물 가능성이 커진다.
보고서는 이주 집단의 소득·자산 수준이 비이주 집단보다 높게 나타나는 데에는 원래 능력이 우수한 사람이 이동했을 가능성, 즉 자기선택 효과도 함께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분석 결과 자기선택뿐 아니라 이주에 따른 직접적인 지역 효과도 큰 것으로 추정됐다고 밝혔다. 단순히 잘할 사람이 이동한 데 그친 게 아니라, 이동 자체가 경제력 개선에 일정 부분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결국 쟁점은 이주가 도움이 되느냐가 아니라, 누가 이주할 수 있느냐다. 기회의 공간이 수도권에 집중될수록 수도권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은 또 다른 자산이 된다. 이주가 계층상승의 사다리라면, 그 사다리의 입구부터 이미 불평등하게 놓여 있는 셈이다.
정민수 한국은행 조사국 지역경제조사팀장은 “이주한 자녀와 비이주 자녀의 소득 이동 경로가 뚜렷하게 갈렸다”며 “비수도권 저소득층은 수도권 이주 비용 부담이 커 상향 이동 기회를 충분히 누리기 어려운 만큼, 지역 안에서도 양질의 교육과 일자리를 확충하는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 회에서는 이런 격차를 줄이기 위한 해법을 짚는다. 보고서가 제시한 지역별 비례선발제, 비수도권 거점대학 집중 투자, 거점도시 중심 투자 방안이 실제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살펴본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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