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토교통부는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가 지난달 세 차례 전체회의를 열어 누적 100회 개최에 도달했다고 8일 밝혔다.
위원회는 회의에서 모두 2047건을 심의했다. 이 가운데 855건을 전세사기피해자 등으로 최종 가결했다. 가결 건수 중 789건은 신규 신청이나 재신청 건이었다. 나머지 66건은 기존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과정에서 피해자 요건 충족이 추가로 확인된 사례다.
이에 따라 위원회가 지금까지 최종 결정한 전세사기피해자 등은 누적 3만8503건이 됐다. 긴급 경·공매 유예 협조 요청 결정은 누적 1167건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피해자로 결정된 임차인을 대상으로 주거, 금융, 법적 절차 등 모두 6만3568건의 지원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정부 발표의 가장 큰 장점은 피해자 지원 체계가 일정 수준 제도화됐다는 점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 긴급 경·공매 유예, 경·공매 대행, 조세채권 안분, 대환대출, 공공임대 매입요청, 법률지원 등이 하나의 지원망으로 묶였다. 피해자가 개별 기관을 찾아다니며 대응해야 했던 초기 혼란에 비하면 행정 절차와 안내 체계가 정비된 셈이다.
특히 LH의 피해주택 매입 확대는 주거 안정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평가된다. LH의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 실적은 지난달 28일 기준 8357호다. 2024년 한 해 매입 실적은 90호에 그쳤다. 이후 2025년 상반기 월평균 163호, 하반기 월평균 655호로 늘었다. 올해 1∼4월에는 월평균 840호까지 증가했다.
피해주택 매입 제도는 LH 등 공공주택사업자가 전세사기피해자로부터 우선매수권을 넘겨받아 경·공매 절차에서 해당 주택을 낙찰받는 방식이다. 피해자는 경매 차익을 보증금으로 전환해 기존 주택에 최대 10년간 계속 거주할 수 있다. 퇴거할 때는 경매 차익을 지급받을 수 있다. 보증금 회수가 어려운 피해자에게는 퇴거 압박을 낮추는 장치다.
정부는 매입 속도를 높이기 위해 매입점검회의와 패스트트랙도 운영하고 있다. 패스트트랙은 매입 사전협의와 주택매입 요청 절차를 일원화하고 단계별 업무 처리 기한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전세사기 피해가 장기화될수록 임차인의 주거 불안과 금융 부담이 커지는 만큼 매입 속도 개선은 분명한 정책 성과로 볼 수 있다.
금융지원도 확대됐다. 전세사기 피해로 기존 전세대출 상환이 어려운 경우 보증기관 보증분은 보증기관이 우선 대위변제한 뒤 피해자가 최장 20년 동안 무이자로 나눠 갚을 수 있다. 보증기관 보증분을 제외한 잔여채무에 대해서는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기업·카카오뱅크가 장기 분할상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한국주택금융공사 전세보증을 이용한 피해자가 보증분을 제외한 잔여채무 10%를 전세대출 취급 은행에서 최대 20년간 나눠 갚도록 하는 내용이다. 전세보증금 손실과 대출 상환 부담을 동시에 떠안은 피해자에게는 신용 추락을 막는 완충 장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위원회 처리 건수 6만3124건 가운데 가결은 3만8503건이다. 가결률은 61.0%다. 나머지는 부결 1만4028건, 적용 제외 6235건, 이의신청 기각 4358건이다. 피해를 호소한 신청자 중 상당수는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제도 밖에 남았다.
가장 큰 쟁점은 피해 인정 기준이다. 부결 사유 중 ‘보증금 미반환 의도 미충족’은 9550건으로 전체 부결의 68.08%를 차지했다.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더라도 임대인의 보증금 미반환 의도나 사기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자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기준은 제도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장점이 있다. 단순 임대차 분쟁과 조직적 전세사기를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정된 재정과 공공 자원을 투입하는 만큼 일정한 심사 기준도 필요하다. 허위 신청이나 일반 채무불이행 사건까지 모두 전세사기 피해로 인정하면 지원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 입장에서는 이 기준이 높은 문턱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임대인의 고의성은 계약 당시 정보, 임대인의 자금 흐름, 다수 피해 발생 여부, 보증금 반환 능력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일반 임차인이 이를 스스로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피해자는 보증금을 잃었지만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적용 제외 사례도 적지 않다. 보증보험이나 최우선변제금 등으로 보증금 전액 반환이 가능한 경우, 경매 등을 통해 자력 회수가 가능한 경우, 경·공매 완료 뒤 일정 기간이 지난 경우 등이 적용 제외로 분류됐다. 제도 취지상 중복 지원을 막는 것은 필요하지만, 실제 회수 가능성과 피해자의 체감 회복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피해 양상은 청년층에 집중됐다. 피해자 가운데 30세 이상 40세 미만은 1만9398건으로 50.38%였다. 20세 이상 30세 미만은 9867건으로 25.63%였다. 40세 미만 피해자가 전체의 76.02%에 달했다. 사회 초년생과 신혼부부, 청년 직장인이 전세사기의 주요 피해층이라는 점이 통계로 확인된 것이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피해가 60.5%를 차지했다. 서울 1만1094건, 경기 8480건, 인천 3729건이었다. 비수도권에서는 대전 4342건, 부산 3980건이 많았다. 전세 수요가 많고 빌라·오피스텔 임대차 거래가 활발한 지역을 중심으로 피해가 집중된 것으로 풀이된다.
주택 유형별로는 다세대주택 피해가 1만1163건으로 29.0%를 차지했다. 오피스텔은 8014건, 다가구주택은 7040건이었다. 아파트 피해도 5159건으로 13.4%에 달했다. 전세사기가 비아파트 시장에서 두드러졌지만, 피해가 특정 주택 유형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도 확인됐다.
보증금 규모는 3억원 이하가 대부분이었다. 1억원 이하가 1만6103건, 1억원 초과 2억원 이하가 1만6674건, 2억원 초과 3억원 이하가 4797건이었다. 전체 피해자의 97.6%가 보증금 3억원 이하 구간에 몰렸다. 고가 주택 투자 실패라기보다 서민·청년층의 주거 보증금 피해에 가깝다는 의미다.
이번 발표의 또 다른 장점은 피해자 접수, 결정, 지원 현황을 비교적 구체적인 통계로 공개했다는 점이다. 연령, 지역, 주택 유형, 보증금 규모, 부결 사유, 적용 제외 사유가 함께 제시됐다. 전세사기 대응 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쌓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면 실질적 회복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는 부족하다. 정부는 지원 건수 6만3568건을 제시했지만, 피해자가 실제로 회수한 보증금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피해자 결정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 LH 매입 신청부터 실제 매입까지 걸리는 기간, 공공임대 전환 뒤 계속 거주 비율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지원 실적이 늘었다고 해서 피해 회복이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공매 절차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보증금 손실이 확정되기 전까지 피해자는 대출 이자, 이사 비용, 법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일부 피해자는 기존 집에 머물 수도, 새 주거지로 옮길 수도 없는 상태에 놓인다.
금융지원 역시 보완이 필요하다. 장기 분할상환은 당장의 연체와 신용정보 등록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피해자가 갚아야 할 채무 자체를 없애는 제도는 아니다. 보증금을 잃은 임차인에게 남은 채무를 20년에 걸쳐 갚게 하는 방식은 부담을 늦출 뿐, 손실을 온전히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피해자 지원 창구가 다양해진 점도 장점이지만, 제도 이용이 복잡하다는 문제는 남는다. 피해자 결정은 지방자치단체와 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주택 매입은 LH, 경·공매 지원은 HUG와 법원, 금융지원은 은행과 보증기관, 긴급복지는 지방자치단체와 복지 기관이 맡는다. 피해자에게는 여전히 여러 기관을 오가야 하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를 겪은 임차인이 거주지 관할 시·도에 피해자 결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위원회 의결을 거쳐 피해자로 결정되면 HUG 전세피해지원센터와 지사를 통해 지원 대책을 안내받을 수 있다.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는 일부 지원 대책을 원스톱으로 신청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다음 과제가 양적 지원 확대에서 질적 회복 관리로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피해자 결정 건수, 지원 건수, 매입 호수만으로는 정책 효과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실제 보증금 회수율, 주거 유지율, 채무 경감 효과, 심사 기간 단축 여부가 함께 공개돼야 한다.
피해 인정 기준도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단순한 임대차 분쟁과 전세사기를 구분하는 기준은 유지하되, 임차인이 임대인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구조를 완화해야 한다. 수사 자료, 세금 체납 정보, 선순위 권리관계, 다수 피해 발생 정보 등을 행정기관이 더 적극적으로 연계해 심사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 필요하다.
백승록 전세사기피해지원단 피해지원총괄과장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해 위원회 심사와 피해주택 매입, 금융·법률 지원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다”며 “피해자가 제도를 신속히 이용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협의해 매입 절차를 단축하고 잔여채무 분할상환 안내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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