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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너머, 초협력의 질서와 공유경제의 미래

[리뷰] 이민화 ‘공유 플랫폼 경제로 가는 길’

기사입력 : 2026-03-3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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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공유 플랫폼 경제로 가는 길(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사진=공유 플랫폼 경제로 가는 길(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공유경제신문 김봉수 기자] ‘공유 플랫폼 경제로 가는 길’은 공유경제를 유행어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재설계 문제로 끌어올린 책이다. 이민화가 2018년 1월 창조경제연구회(KCERN)에서 펴낸 이 책은 에어비앤비와 집카, 환자 커뮤니티 같은 사례를 경유해 4차 산업혁명과 플랫폼, 데이터, 협력이 결국 하나의 질서로 수렴한다고 주장한다.

출간 당시에는 한발 앞선 전망처럼 보였지만, 지금 다시 읽으면 오히려 현재를 관통하는 질문들이 선명해진다. 플랫폼은 누구의 것인지, 데이터는 어떻게 개방되고 나뉘어야 하는지, 기술이 만든 연결은 사회적 신뢰로 이어질 수 있는지 책은 집요하게 묻는다.

이 책의 강점은 공유경제를 도덕적 미담이나 절약의 습관으로 좁히지 않는 데 있다. 저자는 공유를 “협력”으로 읽고,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각자의 전문성, 곧 ‘필살기’를 강조한다. 모두가 평균적인 능력에 머무는 집단보다 저마다 뚜렷한 강점을 가진 집단이 협력의 시대에 더 강하다는 그의 비유는 단순하지만 선명하다. 이 대목에서 책은 공유경제론이면서 동시에 인재론이고, 산업론이면서 동시에 사회조직론이 된다. 제공된 책 소개에 담긴 메시지가 책 전체의 문제의식을 정확히 요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이민화식 분류 체계다. KCERN 보고서는 공유경제를 정보, 물질, 관계의 공유로 나누고, 다시 소비·시장·생산과 영리·비영리 축으로 교차시키는 이른바 ‘3×3×2 입체 모델’로 정리한다. 대개 공유경제 담론이 개별 서비스 사례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면, 이 책은 개념의 지도를 먼저 그리려 했다. 그 덕분에 독자는 우버나 숙박 공유 같은 익숙한 서비스 바깥에서 공공 데이터 개방, 오픈소스, 긱 플랫폼, 사회 안전망까지 한 묶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공유경제를 산업 서비스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프레임으로 확장한 셈이다.

저자의 이력은 이런 시야를 설명해 준다. 그는 1985년 메디슨을 창업해 한국 벤처 1세대를 연 인물로 평가받았고, 벤처기업협회 설립과 벤처기업특별법 제정 등에도 깊이 관여했다. KAIST가 그의 공헌을 기려 ‘이민화 홀’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9년 별세한 뒤에도 그를 한국 벤처의 선구자로 부르는 이유는, 단지 기업가였기 때문이 아니라 기술혁신을 제도 설계와 연결한 드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이민화의 문제의식이 가장 집약된 말년의 기록 가운데 하나로 읽힌다.

다만 이 책이 오늘의 독자에게 완전히 매끈하게 읽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한계는 낙관의 기울기다. 저자는 네트워크 효과와 거래비용 축소가 사회 전체의 부를 키우고, 개방된 거버넌스 위에서 공유 플랫폼이 공진화할 것이라 본다. 그러나 지난 몇 년의 현실은 플랫폼이 곧바로 공정과 상생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줬다. 데이터는 개방되기보다 독점되기 쉬웠고, 연결은 협력 못지않게 종속도 낳았다. 플랫폼 노동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지만, 동시에 안전망의 공백과 알고리즘 통제라는 과제를 드러냈다. 이 책이 설계도를 제시한 반면, 현실은 그 설계도를 구현할 정치와 규범이 얼마나 더디게 따라오는지 증명해 보인 셈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낡았다고 말하긴 이르다. 오히려 데이터 개방과 플랫폼 인프라, 사회적 신뢰를 하나로 묶어 보려 한 시도는 지금 더 절실하다. 정부가 데이터 플랫폼과 공공데이터 개방을 국가 전략으로 다뤄 온 흐름은 이민화가 강조한 방향과 맞닿아 있다. 문제는 기술 인프라의 확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책이 말한 선순환 구조가 현실이 되려면, 플랫폼 참여자 간 보상 기준, 데이터 활용의 투명성, 노동권과 사회보험의 적용, 알고리즘 책임성 같은 더 까다로운 제도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이 책을 다시 읽는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비전은 이미 제시됐고, 이제 남은 건 실행의 윤리와 규칙이다.

문장과 구성 면에서 보면 책은 학술 보고서와 대중 교양서의 중간쯤에 서 있다. 개념 정의와 정책 로드맵이 촘촘한 대신, 서사의 유려함이나 사례의 생생함은 다소 약하다. 기자의 시선으로 보자면,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은 통찰보다 문장에 있을 때가 많은데, 이 책은 그 반대편에 가깝다. 읽는 맛보다는 생각할 거리로 밀어붙인다. 그래서 이 책은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라, 밑줄을 치며 읽는 책이다. 플랫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서도, 성공담 중심의 미래예측서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가 오히려 이 책의 개성이다.

결국 ‘공유 플랫폼 경제로 가는 길’의 가치는 정답을 줘서가 아니라 질문의 수준을 끌어올린 데 있다. 공유경제는 착한 소비가 아니라 권력의 재배치 문제이며, 플랫폼은 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인프라의 문제라는 점을 이 책은 일찍이 짚었다. 다만 그 비전이 현실성을 얻으려면 “공유”라는 말의 밝은 표면 아래 감춰진 불평등과 집중, 배제의 구조까지 함께 다뤘어야 했다. 지금 이 책을 다시 읽는 일은 저자의 낙관을 그대로 좇는 일이 아니다. 그의 설계도를 현재의 균열 위에 올려놓고, 무엇이 실현됐고 무엇이 비어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 보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완성된 답안이라기보다, 여전히 수정 중인 대한민국 플랫폼 경제의 초고라 부를 만하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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