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은 삶의 공간을 넘어 가장 확실한 자산 증식 수단으로 굳어졌고, 금융은 그 흐름을 떠받치는 통로가 됐다. 한국 사회가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쉽게 떨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내놓은 ‘2026년도 가계부채 관리방안’은 이런 흐름을 더는 두고 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내년 가계대출 증가율을 1.5% 이내로 관리하고,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8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가 보유한 수도권·규제지역 아파트 담보대출의 만기연장을 원칙적으로 막고, 2021년 이후 취급된 사업자대출도 전면 점검하기로 했다. 총량 관리에 그치지 않고, 부동산으로 흘러드는 대출의 방향 자체를 바꾸겠다는 신호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일 “부동산 시장과 금융의 과감한 절연”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표현은 강했지만, 지금 필요한 것도 그만한 문제의식인지 모른다.
그동안 한국의 금융은 생산적 투자보다 부동산 담보에 더 익숙했다. 개인은 대출을 끌어 집을 샀고, 금융회사는 주택담보대출을 가장 손쉬운 수익원으로 여겨왔다. 위험은 낮고 수익은 안정적인 구조였다.
그러나 그런 구조가 경제 전체에도 이로운 것은 아니었다. 자금은 혁신 산업보다 부동산으로 흘렀고, 집값은 실수요보다 기대수익에 더 크게 흔들렸다. 청년층과 무주택자에게 남은 것은 높은 진입장벽과 더 큰 박탈감이었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다주택자 대출의 만기연장을 직접 겨냥했다는 점이다. 신규대출을 조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기존 대출이 계속 연장되면 시장은 규제를 버틸 시간을 벌고, 다주택자의 차입 구조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정부가 이제라도 이 고리를 끊겠다고 나선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사업자대출의 용도 외 유용을 전면 점검하고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마찬가지다. 편법과 우회를 더는 방치하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책은 단순한 금융 규제가 아니라 구조 전환의 출발점에 가깝다. 정부가 정말 시장을 이기겠다는 뜻이라면, 그것은 가격을 억지로 누르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부동산으로 향하던 자금의 유인을 줄이고, 투기적 수요가 더는 합리적 선택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일이다.
결국 시장은 이익을 따라 움직인다.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장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돈이 향하는 방향의 손익 계산을 바꾸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는 돈이 안된다’는 원칙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바로 그 지점까지 가야 한다.
물론 선언만으로 시장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번 대책도 예외 규정이 적지 않고, 현장에서는 적잖은 혼선이 예상된다. 임차인이 있는 경우 만기연장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어떤 서류를 받아 어떤 기준으로 심사할지, 금융회사마다 다른 설명이 나오지 않게 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정책은 발표문보다 일관성에서 완성된다. 같은 사례에 다른 답이 나오면 시장은 금세 허점을 찾고, 좋은 취지도 힘을 잃는다. 강한 규제일수록 집행은 더 정교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대책의 의미를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부동산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는 체념은 결국 정부가 시장 논리에 적응해온 결과이기도 했다. 집값이 오르면 뒤따라 규제하고, 대출이 늘면 뒤늦게 조이는 식의 대응으로는 악순환을 끊기 어렵다.
이제는 그 공식을 깨야 한다. 정부가 시장을 이긴다는 것은 시장을 거스르는 일이 아니라, 시장이 공공의 목표를 벗어나 폭주하지 않도록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한국 경제의 오래된 병목은 과도한 부동산 집중이었다. 돈이 집으로만 향하는 구조에서는 혁신도, 투자도, 생산성도 자라기 어렵다. 가계부채 대책은 그래서 단지 부채를 줄이는 정책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부동산 중심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정부는 이번만큼은 시장의 뒤를 쫓지 말고 앞에서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 싸움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
관련기사
┗다주택자 주담대 만기연장 제한 Q&A···예외 인정 범위는
┗정부, 가계대출 증가율 1.5%로 관리···다주택자 수도권 아파트 대출 만기연장 제한
┗[집값 상승의 두 얼굴] 집값 상승의 끝, 내수 부진과 저출산의 그림자 ③
┗[집값 상승의 두 얼굴] 같은 집값 상승, 세대 따라 엇갈린 후생 ②
┗[집값 상승의 두 얼굴] 집값 상승의 역설, 청년·무주택자부터 움츠린 소비 ①
┗지역 격차 줄여야 열리는 계층이동···거점대학·거점도시 육성
┗이주하면 올라섰지만···모두에겐 닫힌 계층상승 사다리
┗계층이동 막힌 한국···소득보다 깊은 자산 대물림
<저작권자 © 공유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